회사생활 이야기 #4 – 기회는 반드시 온다

첫 번째 회사를 거쳐 맞이하게 된 두 번째 회사는 어쨌든 계열사였고 같은 건물을 사용했기에 분위기 자체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회사 규모가 3배는 더 컸기에 함께 부딪히며 일하게 되는 사람도 마찬가지로 늘어났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그 와중에 새로운 기회는 반드시 온다. 그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입사한 팀에 특이한 직원이 한명 있었다. 계약직 직원이었는데, 마케팅팀에서 진행하는 온/오프라인 마케팅 활동을 도와주고 실제 운영까지 대행해 주는 대행사의 직원이 파견나온 셈이었다. 그 직원의 마케팅 회사는 본업이 B2C 영역이었기에, 나는 덕분에 B2C의 마케팅 기법을 B2B 분야에 실험해볼 수 있었다. 좀 더 말랑말랑한, 재미나고 참신한 아이디어가 활발하게 진행되던 분야는 B2C였기에, 지루하기 짝이 없고 검증된 것만 해왔던 B2B 마케팅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었다. 비록 실패도 많이 맛봤지만, 이 때 B2C 마케팅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조금이나마 경험해 볼 수 있었다.

몇 년의 시간이 흐른 뒤 회사에 위기가 찾아왔다. 인력 구조조정이 단해됐다. 우리팀에서는 파견나와있던 직원이 자진해서 퇴사했다. 그리고 그는 곧바로 자신만의 회사를 차렸고, 우리팀도 전속 대행사로 그 회사와 계약, 계속 일을 주고 도움을 받았다. 소보로빵과 동갑내기였던 그 직원은 이제 마케팅회사 대표가 되었고, 난 외근을 핑계로 그의 사무실에 자주 출근하며 그의 생각과 아이디어를 내 일에 녹여냈다. 그 결과, 난 새롭고 참신한 아이디어 뱅크라는 명성을 조금씩 얻게 되었다. 이 명성에 대한 지분의 8할은 마케팅회사 대표님 덕분이다.

우리는 죽이 잘 맞았다. 동갑인 것도 있지만 서로 아이디어 짜내고 공유하는게 너무도 재미있었다. 나도 자연스레 그들의 일을 조금 도와주게 되었고, 내 일에 더 적극적으로 그 회사의 인력을 활용했다. 마케팅 회사는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자연스레 담당하는 고객도 늘어났다. 그리고 올 것이 왔다. 나에게 함께 일하자고 제안을 해 온 것이다. 난 사실 내심 그걸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명확하게 처우 조건을 논하지 않았고, 업무 분야에 대해서도 명확한 부분이 없었다.

이 동갑내기 대표님은 나에게 가장 큰 동기부여를 준 사람이었다.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떠올리며 그걸 실행에 옮기고, 성과를 내고, 새로운 고객을 사로 잡아 회사 규모를 점점 더 키워 나가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며 자연스레 그를 동경하게 되었다. 하지만 소보로빵은 회사를 그만두고 그 회사로 이직할 용기를 내지 못했고, 우리의 관계는 광고주 – 대행사 이상으로 발전하지 않았다. 그를 보며 나도 내 일을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품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내가 이런 마음을 품게 만들어줬다는 것 만으로도 매우 고맙게 생각한다.


처음 마케팅팀에 왔을 때 담당했던 제품은 3개였다. 몇 년이 더 지나고 팀에 퇴사자가 발생했다. 팀장님은 그 직원이 담당했던 솔루션을 나를 비롯한 다른 팀원들에게 분배하기로 결정했다. 많이 떠맡을 수록 일이 더 많아지는 것이다. 일이 많아진다고 연봉이, 월급이 더 늘어나는 것도 아니지만, 난 과감하게 결단했다. 내가 그 솔루션들을 맡겠노라고.

마케터로 일했던 4년 동안 담당했던 제품의 수는 3개에서 6개로 늘어났다. 그리고, 내가 상대해야 했던 사람들도 곱절로 늘어난 것은 물론이다. 당연히 일이 늘어났지만 그 동안 해왔던 요령이 있었고, 처음 담당했던 3개 제품에서 활용했단 아이디어를 새로운 3개에 적용하니 성과도 금방 낼 수 있었다. 성과가 나기 시작하니 만나는 사람들도 점차 늘어나기 시작했다. B2B 마케팅도 결국 영업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단지 고객을 직적 만나지 않을 뿐이지 사람을 만나는 것은 똑같았다. 다수의 제품과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함께 협업하며 성과를 냈던 것이 회사 내부적으로도 알려졌나보다. 어느날, 뜻밖의 기회가 찾아왔다.

회사 입사 후 4년 뒤, 회사는 대대적인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마케팅팀을 없애고, 마케팅 인력들을 영업팀으로 배속시킨 것이다. 팀원들은 자신이 담당했던 제품의 영업팀으로 소속이 바뀌었다. 단, 팀장님과 나는 제외였다. 그룹사 회장님 아들이 전략기획실을 만들고 팀원들을 모으고 있단다. 전략기획실에 팀장님과 내가 낙점됐다. 인사팀에서 정식으로 발령을 냈고, 새로운 팀원들, 그리고 그룹 후계자와 함께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이 후계자는 다른 계열사 대표로 갔고, 전략기획실은 기존의 마케팅팀 팀장님이 꿰찼다. 소보로빵은 자연스럽게 비즈니스 일선에서 한발짝 물러나, 사장님 직속 전략기획실로 배정되었다. 그리고 사장님은 전략기획실에게 회사의 새로운 아이템을 발굴하라는 미션을 내렸다.

전략기획실 직원은 총 팀장님, 아니 실장님까지 총 7명이었다. 실장님을 제외한 나머지 직원 6명이 2명씩 짝을 이뤄 새로운 사업 아이디어를 발굴해서 기획안을 만들고, 사장님과 본부장들에게 발표했다. 기획이 마음에 들면 좀 더 제대로 추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겠으나, 2달에 하나씩 기획안을 뽑아내던 전략기획실의 아이디어 중 채택된 것은 없었다. 시장조사를 명목으로 사무실에 앉아서 인터넷 검색만 하고 앉았으니 사업 아이디어의 실현 가능성을 제대로 따져볼 수 없는 것이 가장 큰 한계였다. 슬슬 시장조사에 실증이 나던 참에, 실장님에게 선언했다. 외근을 나가겠노라고.


실장님은 어디로 외근나가 누굴 만날 거냐고 반문했다. 난 알아서 잘 할테니 주간보고서로 평가해 달라고 선언한 뒤 곧장 동갑내기 마케팅회사 대표님을 찾아갔다. 그리고 그의 도움으로 다양한 스타트업 대표와 직원들을 만날 수 있었다. 회사 전략기획실 소속 명함은 스타트업 대표들을 쉽게 만날 수 있는 명함이었다. 실제로 우리 회사도 전략적 투자자 포지션을 취했기에(단순히 재무적 투자만 하는 것이 아닌, 추후 인수를 목적으로 하는 투자를 말한다.), 호기심만으로 스타트업 대표들을 만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다양한 스타트업 데모데이에도 참가해서 정보를 얻고, 스타트업들을 만났다. 일주일 중 3일은 외근다니며 B2C 업계의 스타트업들을 만나며 공부했다. 이 때 스타트업 씬과 투자업계의 생리를 경험할 수 있었다.

이렇게 얻은 지식을 토대로 좀 더 현실서어 있는 사업 아이디어를 개발, 발전시켜서 내부 임원들에게 발표했더니 반응이 달라졌다. 비즈니스 프로세서를 특허로 내자는 제안도 받았다. 이런 상황이 되니 더 밖으로 다니며 사람들을 더 만나고 다녔다. 종국에는 전문 벤처 투자사를 우리 회사와 연결, 이 벤처 투자사를 통해 미국의 유망한 스타트업 정보를 얻을 수 있었고, 나중에 우리 회사는 이 벤처 투자사가 조성한 펀드에 100억원 규모의 자금을 투자하기로 했다. 소보로빵이 이 과정에 기여하지는 않았지만, 첫 다리를 놔준 셈이었다.

밖에 나가 새로운 회사 대표들을 만나고,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고, 그 내용을 토대로 정보를 찾고 정리해서 기회안을 만드는 일상이 이어졌다. 비록 회사에서 실제 사업으로 발전시킨 아이디어는 없었지만, 이 기간동안 정말 많은 공부를 할 수 있었다.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도 없이, 그저 순전히 새로운 지식만 쌓고 있는데 월급을 받았다. 이렇게 회사를 다녀도 될까 싶을 정도로, 정말 공부한 했던 1년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인사팀에서 연락이 왔다. 사장님이 보자신다. 영문을 모른 채 사장실로 향했다. 그리고 가진 면담자리에서 사장님은 뜻밖의 제안을 했다. 다른 회사로 파견을 가라고 했다.

당시 회사의 다른 본부 내에 있던 기획팀에서 오랫동안 추진해왔던 어떤 중소기업의 인수 건이 있었다. 기획팀 팀장과 팀원 1명이 1.5년을 매달려서 추진했던 일로, 다행히 잘 풀려서 회사는 그 중소기업을 인수하기로 결정했다. 단, 이 기업을 당장 회사로 편입시키기에는 서로간의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흡수합병할 수 있도록 1년의 시간을 주기로 했다. 그리고 그 시간동안 이 중소기업에 우리 회사의 문화를 입히고, 회사를 더 성장시킬 수 있도록 새로운 비즈니스를 발굴하는 임무가 주어졌다. 그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회사에서 2명의 인원이 파견가기로 했다. 인수를 총괄해 온 기획팀 팀장, 그리고 그 기획팀의 팀원이 아닌 소보로빵이 결정됐다. 순전히 사장님의 독단이었다.

전략기획실은 사장님 직속 부서였기에, 평소 사장님과 주간회의를 하며 업무를 보고했다. 신규 사업 아이디어에 대한 보고 역시 항상 사장님이 참석했다. 소보로빵은 1년여 동안 사장님에게 제대로 눈도장을 박아둔 셈이었다. 그리고 이번 인수건을 담당해 온 기획팀의 팀원은 나이가 너무 어린 신입 직원이었다. 그래서 이 임무를 나에게 준 것이다. 파견가서 그 사람들과 함께 지내며 우리 회사의 문화를 알려주고, 우리 회사로 자연스럽게 편입될 수 있도록 관리함은 물론, 비즈니스를 더 성장시킬 발판을 마련하라는 임무가 주어졌다. 본의아니게 또 회사를 옮기게 된 것이다. 물론 회사 내부적으로는 파견이지만 소속만 바뀌는 것 뿐이었다. 그래도, 이제 출근지가 바뀌고, 새로운 동료들과 일하게 된 것이니 이직이라고 봐도 되지 않을까.


이해를 돕기 위해 소보로빵 회사를 A, 피 인수 대상인 세 번째 회사를 B라고 지칭하겠다. B는 당시 업계 1위의 회사였지만, B가 몸담은 분야의 시장 규모 전체가 500억 정도 규모의 작은 시장이었다. 하지만 앞으로 점점 더 커질 분야이기에 A는 과감히 B를 인수하기로 결정하고 새로운 시장에 뛰어든 것이다. 그리고 B를 더욱 발전시키라는 임무를 받은 나는 전혀 다른 새로운 분야에서 성과를 내야 한다는 비장한 각오를 다졌다. 하지만 너무도 의욕이 앞섰던 걸까, 첫 인턴 생활때 처럼 의욕이 너무 앞섰던 것이 문제였다. 성과를 내기 위해 주변을 돌아보지 않게 되었다. 아니 무시하고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렸다. 그래서 또 적을 만들고 말았다.

나에게 주어진 임무는 기존 비즈니스 확장을 위한 제휴였다. 기존에 A회사의 전략기획실에서 했었던 장기를 앞세워 밖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파견나간 B의 비즈니스와 연계하는 것이 주 임무인 것이다. 그래서 열심히 사람들을 만나러 다녔고, 새롭게 일을 벌렸다. 그 때마다 B 기존 인력, 원래 있었던 사람들과의 충돌이 생겼다. 그렇지 않아도 소보로빵은 회사 사람들에게 본사에서 파견나온, 감시관같은 이미지였다. A가 B를 인수한 다음 B의 대표와 주요 임원을 내보냈기 때문이다.(인수 조건에 있었던 사항이었다.) 그래서 B의 직원들은 A회사에서 파견나온 팀장과 나를 무척이나 경계했다. 자신들의 목줄을 쥐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여긴 것이다. 물론 그 목줄은 팀장님이 쥐고 있었지, 나에겐 아무런 권한도, 영향력도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B로 파견나오면서 새롭게 기획팀을 신설, 함께 파견온 팀장님이 그대로 팀장 역할을 맡았고, 나는 그 밑에서 팀장님을 보좌하는 2인자였다. 말이 2인자지, 다른 팀원들은 모두 신입에 준하는 팀원들이었기에 가장 경력이 많은 내가 자연스레 보좌역을 맡은 것이다. 그래서, 기존의 B회사 직원들의 경계가 무척 심했다. 내가 B회사 직원들의 평판을 A회사 인사팀과 임원들에게 보고하는 첩자처럼 여겼다. 심히 불쾌했지만 그들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여겼다. 심지어 기존에 B회사에서 기획일을 맡았던 내 또래 과장은, 내가 파견나올 때 자신의 자리를 대체하는 줄 알았단다.

하지만 내 본연의 임무에 대한 성과를 앞에서우면서 B회사에 오랫동안 있었던 베테랑 직원들과의 충돌이 잦았다. 난 기존 B회사 직원들의 텃새에 맞서 싸우는 것을 택했고, 그들에게 변화를 요구했다. 그래서 마찰이 점점 더 심해졌다. 그리고 이 마찰은 A회사에서 같이 넘어온 팀장님, 나아가 A회사 임원진들까지 번지게 되었다. B 회사에 파견나와있던 1년 6개월동안 정말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소보로빵 나름의 가치관을 확고히 세울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다음 글에서는 이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가만이 있으면 중간은 간다는 말이 있지 않나?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 중의 하나다. 그 이유를 다음 글에서 밝히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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