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생활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소보로빵이 거쳐간 회사 이야기부터 하는 것이 맞겠다. 라떼는~ 과 같은 이야기는 나중에 차차 하기로 하고, 일단 소보로빵이 언제부터 회사생활을 시작했고, 어떤 회사들에서 일을 했는지부터 알아보자. 회사생활 이야기 시리즈의 첫 번째 순서는, 약 18년전에 취업을 성공했던 이야기, 첫 취업의 기억에서 시작한다.
어디 돈 많이 주는 알바 자리 없나?
때는 바야흐로 지금으로부터 약 18년 전인 2007년 여름, 지방 소도시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던 소보로빵은 도서관에서 꿀 알바를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당시 증권사 취업을 준비하고 있었기에 증권사 입사 필수 자격증 3종 중 가장 난이도가 낮은 증권투자상담사를 공부하고, 돈도 번다는 핑계로 고향에 내려가지 않고 기숙사에 머물렀다.
하지만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기숙사 방에서 공짜 인터넷을 즐기며 빈둥거렸다. 그리고 동아리 동기와 함께 치렀던 증권투자상담사 시험에서 70점 합격에 68점을 맡고 떨어졌다. 함께 시험을 치른 동기는 80점 이상을 획득에 너끈히 붙었다. ‘아, 역시 난 공부 머리는 없나보다’ 라고 다시 한번 느끼며 낙심하고 있던 그 때, 돈이나 벌자며 도서관 PC에서 고액 알바 자리를 물색했었다.
그때 교내 알바 정보가 올라오던 사이트에서 가장 많은 돈을 주던 알바 자리를 찾았는데, 모 IT 기업에서 인턴을 모집한다는 공고였다. 당시 1개월에 무려 120만원을 받을 수 있는 인턴 기회였고, 기간은 3개월이었다. 9월부터 시작이니 인턴 생활을 하려면 학교를 휴학하거나 인터넷으로 수업을 들어야했다. ‘까짓거 한번 해보지 뭐’라고 생각하고 당시 활동하던 컴퓨터 동아리 생활을 자소서에 우겨넣어 하루만에 서류를 접수했다. 그리고 일주일 뒤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를 받았다.
“서류 합격을 축하합니다. 면접보러 오실래요?”
진짜 ‘헐~’이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서류 접수 뒤 사실 온라인 게임 하느라 잊고 있었는데, 진짜 서류에 합격을 해버린 거였다. 면접은 3일 후, 오후 시간대였다. 전화를 받고 난 후 기숙사에 돌아온 소보로빵은 그 때부터 면접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사실 면접 준비랄것도 없었다. 그냥 회사 홈페이지 들어가서 둘러본 것이 다였으니까. 홈페이지에 있는 용어들 태반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일단 회사 연혁이랑 주가만 봤다. 그래도 명색이 경영학과였고 증권사 취업을 준비했던지라 아는 내용이 이것 뿐이었다.
그리고 3일 뒤에, 참으로 오랫만에 정장을 차려입고 그 더운날 지하철 타고 걷고 또 걸어서 면접실에 도착했다. 인사담당자의 안내를 받아 대기실에 들어갔는데, 나 말고 2명이 더 있었다. 소보로빵처럼 안경을 쓴, 뭔가 되게 똑똑한 것 같은 남자 1명, 그리고 기억이 가물가물한 여자 1명이었다. 대기실에서 기다린지 한 10분 지났을까?
“이쪽으로 오시겠어요?”
드디어 우리 차례가 되어 회의실에 들어갔다. 면접관은 3명. 가운데에 앉은 두꺼비같은 어르신이 가장 나이가 많아보였고, 양 옆에 얼굴이 꺼먼 아저씨, 그냥 평범하게 생긴 좀 더 어려보이는 아저씨가 있었다. 그리고 시작된 자기소개 시간. 함께 면접봤던 안경 쓴 남자는 무슨 회장 출신이라며 자신을 포장했고, 여자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소보로빵도 뭐라고 소개했는지 잘 모르겠다. 그냥 그런 평범한 자기소개였을거다.
이어지는 면접관의 질문들 역시 평이했다. 주로 이력서와 자소서에 언급된 내용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말해 달라는 것이었다. 대답을 듣고선 고개를 끄덕이며 뭔가 A4 용지에 끄적이는 모습이 보였다. 면접관들의 표정은 시종일관 무표정했다. 가장 어려보이던 아저씨는 지루해 하는 것 같았다. 소보로빵도 점점 지루해져갔다. 왜냐고? 면접관들이 나에게 질문을 거의 안했거든. 하지만 안경 쓴 남자에게는 면접관 모두 질문을 했다. 그리고 그는 정말이지 청산유수처럼 술술 자기의 경험을 자신감있게 늘어놓았다.
“마지막으로, 궁금한 것 있으면 질문해봐요.”
15분쯤 시간이 흘렀을 까? 안경 쓴 남자가 지분을 거의 4/5는 가져간 것 같았다. 면접관들이 취미가 뭐냐고 물었다. 안경쓴 남자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데 여자는 아버지랑 등산가는게 취미라며 정상에 오르면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나? 너무나 가식적이고 전형적인 대답으로 느껴졌다. 반면 안경쓴 남자는 내용은 기억나진 않지만 뭔가 되게 그럴싸한 대답을 했던 것 같아. 소보로빵은 솔직하게 ‘게임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좀 잘해요.’라고 얘기했다.
그 때 가운데에 앉아있던 두꺼비 어르신이 나즈막히 궁금한 것 있으면 편하게 물어보라고 했다. 안경 쓴 남자가 뭐라고 질문을 하고 얼굴이 꺼먼 아저씨가 대답해 줬는데, 둘이 몇 마디 주고 받는 것을 보고는 ‘아, 쟤가 되겠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는 질문을 안했다. 그래서 소보로빵은 ‘궁금한게 하나 있습니다’라고 말했고, 두꺼비 어르신이 ‘뭔데? 편하게 물어봐요’라고 했다. 그래서, 질문을 했다.
‘오늘 주가를 보니 3,XXX원(정확히 기억이 안난다)입니다. 그런데 추이를 보니 꽤 오랫동안 이 가격대에 머물러 있더라고요. 지주회사는 그룹의 대표격일텐데,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그렇게 매력적인 회사로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회사 입장에서 주식가치 제고를 위해 장기적으로 어떤 전략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라고 질문을 던졌다. 사실 지난 주 까지 증권투자상담사 시험을 준비했던 터라, 이 회사에 대해 찾아본 정보 중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주식밖에 없어기 때문이었다. 그랬더니 두꺼비 어르신이 무릎을 탁 치며 말씀하시길.
“이제껏 정말 많은 신입사원 면접을 봐왔지만, 이런 질문을 한 사람은 자네가 처음이야”
그러더니 회사의 비즈니스가 무엇이고 어떻게 수익을 내고 있으며, 3년, 5년, 10년 단위로 단기, 장기적 전략과 회사의 비전을 한 10분 넘게 신나게 이야기하셨다. 솔직히 무슨 내용이었는지 기억이 잘 안난다. 자포자기 심정으로 그냥 정말 증권사 취업 준비생 입장에서 순수하게 궁금했기 때문에 한 질문이었다. 더 솔직해 지자면, 사실 그렇게 궁금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반응이 너무 좋은 거다.
어르신은 장황하게 회사의 전략과 비전을 늘어놓더니, 이것으로 면접을 끝내겠다고 선포했다. 그리고 인사담당자를 불러 우리가 마지막 면접조였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같이 있던 면접관들에게 담배피러 가자며 자리를 떴다. 우리도 인사담당자의 안내를 받아 회사를 나왔다. 회사 문 앞에서 인사담당자가 건넨 봉투가 있었는데, 면접비 2만원이 들어있었다.
소보로빵님, 합격하셨습니다.
면접을 보고 1주일 뒤, 비가 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도서관에서 책을 정리하던 중 또 모르는 번호로 전화를 받았다. 그 인사담당자였다. 그리고는 ‘축하해요, 합격하셨습니다. 9월 5일에 오리엔테이션을 가질거니 오전 9시까지 오시겠어요?’라고 말했다.
예상하지 못했다. 정말 예상 밖이었다. ‘합격이라고? 왜? 어째서?’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면접이 끝나고 합격자가 있다면 당연히 그 안경 쓴 남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 남자도 합격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9월 5일 오리엔테이션 장소에서 그를 볼 수는 없었다. 소보로빵이 그를 물리치고 합격한 것이다. 이렇게 소보로빵의 첫 인턴 생활이 시작됐다.
“네가 걔구나? 마지막에 장기적 관점에서 회사의 전략이 뭐냐고 물었다던”
오리엔테이션이 끝나고, 인사담당자의 안내로 배정받은 팀에 도착하니 팀장님이 잠깐 보자며 회의실로 불었다. 그리고 담배에 불을 붙이시더니(이 당시에는 회의실에서 담배를 폈었다.) ‘두꺼비 부장님이 너 엄청 맘에 들었다고 하시더라. 그 질문 때문에 네가 붙은거야’라고 하셨다. 세상에, 생각도 못했다. 별 생각없이 던진 질문이었는데, 그것 때문에 합격한 거라고? 아무튼, 이렇게 소보로빵의 첫 직장생활이 시작됐다. 비록 3개월짜리 인턴이지만 말이다.
인턴은 총 4명이었다. 소보로빵 포함 남자 3명에 여자 1명. 남자 1명은 한 살 많은 형이었고, 나머지 둘은 동갑이었다. 이들과 3개월동안 같은 본부의 다른 팀에서 인턴 생활을 하게 됐다. 인사담당자는 좋은 평가를 받은 인턴은 정규직으로 채용할 수도 있으니 열심히 해보라고 격려했다. 그 말을 들은 순간부터 인턴 동기들은 더 이상 동기가 아니었다. 경쟁자였다. 그리고 그 경쟁을 뚫고, 소보로빵은 3개월 뒤에 홀로 살아남았다. 그렇게, 대학교 졸업을 1년 앞둔 3학년 2학기 말에 취뽀에 성공했다. 비록 잃은 것도 많았지만 말이다. 이 얘기는 다른 글에서 좀 더 자세히 해보겠다.
아련했던 첫 취업의 기억 : 시작은 중견 그룹의 지주회사였다
2008년 1월, 공채로 입사한 동기들과 함께 2주 간의 합숙 오리엔테이션을 마치고 정식으로 입사했다. 모 사업본부 영업1팀에 배정받았고, 직무는 마케팅이었다. 새로운 채널을 발굴하고 신규 고객을 유치하기 위한 마케팅 활동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것이 주 임무였는데, 주로 했던 일은 베테랑 선임들의 업무를 지원하는 것이었다. 말이 좋아 지원이지, 당연히 각종 허드렛일을 도맡아했다. 이 내용은 다음 글에서 좀 더 자세히 풀어보겠다.
아무튼, 도서관에서 알바하다가 다른, 돈 더 많이 주는 알바자리 어디 없나 하고 찾아보다가 우연히 발견한 회사에 서류를 넣고, 정말 운이 좋게도 합격했고, 치열하게 3개월동안 노력해서 정규직 자리를 꿰찼다. 비록 인턴 동기들은 모두 떠났고 연락하지 않았지만, 후회는 하지 않았다. 아니, 후회할 시간도 없었다. 진짜 시간이 정신없이 흘러갔기 때문이다. 그래도, 10여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는, 재개 순위 20위권의 지주회사에 취업했다는, 서울 강남 한복판에 내 책상이 놓여져 있다는 뿌듯함이 있었다.
다음 글에서는, 첫 직장에서 4년동안 보내며 배우고, 깨달았던 것들을 공유해보고자 한다. 그리고, 두 번째 직장으로 이직한 이야기도 이어진다.
끝!